​325Kamra ​홈페이지를 방문하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우리는 비영리단체로 자녀를 잃었거나 해외로 입양보낸 사람들의 유전자를 검사하여, 입양인들과의 혈연관계를 규명하여 입양인들이 친가족을 찾아 가족들의 사연과 병력을 알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환영합니다 
 ​1953년 한국은 입양을 시작한 후, 20만명이상이 전세계로 보내졌으며, 1950년대에서 1960년대사이에 국제입양된 대부분의 아동은 한국여성과 미군 혹은 유엔병사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동이었습니다. 그당시 이승만대통령의 민족 동질성을 강조한 일민주의 정책(일국,일민)은 혼혈아동을 외국으로 보내는데 일조하였으며, 한국에서의 국제입양의 출현이후, 버려지거나 미아가 된 많은 아이들은 고아가 되거나 입양되어졌습니다. 가족의 위기(죽음이나 이혼등)와 미혼모에게서 포기된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한국사회에서 미혼모는 아직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중반에는 국제입양이 절정에 달아, 매일 24명의 아기들이 출생국가를 떠나 외국인의 품으로 갔습니다." (경제학자, 2015.5.23). 한국의 주요 수출품은 한국의 아동이라고 발언했던 미국 NBC TV의 앵커였던 브라이언트 검블을 포함하여 유명기자들의 주의를 끌었던 때가 1988년 서울올림픽 기간중이었습니다. 미국은 모든 한국인 입양아중에 50%가 훨씬 넘는 가장 많은 입양아을 받은 나라이고, 프랑스와 스웨덴이 두번째와 세번째로 많은 입양을 한 나라입니다. 한국인 입양아는 뉴질랜드를 포함하여 그린란드, 아이슬란드 그리고 덴마크자치령인 페로제도에도 보내졌습니다. 





 



"만약 당신이 입양되지 않았다면 그것이 어떤 것인지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는 내 일평생 나를 입양한 부모님께 감사할 것입니다. 하지만 항상 외로움은 있습니다. 왜 엄마는 날 떠나보냈을까, 왜 아빠는 날 버렸을까 하는 질문이 항상 있습니다. 나의 예술성은 어디서 온 것인지, 어딘가에 나같이 생긴 사람이 있을지 항상 궁금해할 것입니다. 이런 감정들이 언제나 당신의 삶에 내제하여 있습니다. 그러한 감정들이 당신을, 그리고 당신이 느끼는 것들을 형성합니다."
                                                          
노엘 크로스
                                                   1956-2015